신의련(愼義連)
운영자 23-12-18 18:44 652 hit
1546~1606. 조선 중기 진안 출신의 효자. 자는 의숙(宜叔), 호는 미계(美溪). 양렬공(襄烈公) 신이충(愼以衷)의 7대손이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릴 때부터 병든 아버지를 모셨다. 임진왜란 때에도 병든 아버지 곁에서 간호하며 피난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왜적이 세거지인 미계촌[현 백운면 노촌리] 마을에 쳐들어와 부친을 죽이려 하자 신의련은 자기 몸으로 부친을 가리며 “내가 대신 죽을테니 병든 노친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왜장이 효성에 감동하여 신의련의 이름을 물어 그 이름을 종이에 써서 태웠는데 종이가 타지 않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놀란 왜장이 동구 밖에 ‘효자가 사는 곳(孝子所居之地)’이라는 방을 붙여, 이후 왜적이 그 마을에는 침범하지 못 하였다. “임진왜란 시기에 이곳으로 피난하여 살아남은 사람이 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이름을 ‘오만동(五萬洞)’이라 부르고 그 들판을 ‘면화평(免禍坪)’이라 하였다고 한다. 신의련의 일이 조정에 알려져 수의부위(修義副慰)의 품계와 정려가 내려졌다. 충효사와 백운면 노촌리의 거창 신씨 사당 송산재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진안의 문화재』(진안문화원, 1998), 지역정보포털(http://www.oneclic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