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수(辛致守)
운영자 23-12-18 18:44 640 hit
신치수(1873~?)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문태서(文泰瑞) 의진에 가담하여 장수·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초에 문태서 호남의병단에 가입한 후 박춘실(朴春實)의 선봉 부대에 배속되었다. 김준대(金俊大), 고명주(高明柱), 고원중(高元仲), 안왈오(安曰五), 심우상(沈尤相), 원도숙(元道淑), 조경화(趙京化), 하준태(河俊太), 한청여(韓淸汝) 등 20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장수, 용담 등 부근 촌락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는 활동을 하였다. 1909년 5월에 장수군 계북면 문성(文城) 동북쪽의 산중에서 함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선봉장 박춘실이 부상하여 체포되었고, 의병 13명이 전사하자 부대가 궤멸하는 참패를 당했다. 그 후 다시 호남의병단에 귀속하여 유격 활동을 하다가 1909년 9월에 검거되었다. 1909년 10월 8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재판부에서 태(笞) 100도를 맞고 풀려났다. 1995년 대통령 표창에 추서되었다. →의병활동과 진안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자료집 별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전북의병사』 하(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0), 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진안문화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