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열(吳基烈)
운영자 23-12-18 18:44 668 hit
1888.3.09~1950.09.28. 애국지사, 제헌의원. 자는 낙중(洛中), 호는 둔암, 마령면 평지리에서 출생. 이조판서를 지낸 오팽숙(吳彭淑)의 후손이다. 1907년에는 이석용(李錫庸)의 호남의병창의동맹단에 참가하여 조영국·김학문과 함께 식량운반의 책임을 맡았고, 1919년 4월 6일 전영상(全永祥)·김구영(金龜永)·황해수(黃海水) 등과 함께 마령면 평지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황해수가 붙잡혀 감으로써 해산하였다. 전영상·김구영 등과 함께 4월 13일 다시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전영상과 함께 일본경찰에 붙잡혀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당하였다. 포상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대훈장, 독립유공건국훈장 애족장이 있다. 부인 박찬순(朴燦順)과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