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빈(吳玭)
운영자 23-12-18 18:44 650 hit
1547~1593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 중 한 분.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영보(榮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오팽숙(오膨叔)의 증손이며, 오사운(吳思雲)의 아들이다. 1590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홍문관 정자로 등용되어 국가문서를 맡아서 처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扈從)하기보다 직접 적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휘하로 들어가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싸움에서 아군이 패하자 이듬해 의병장 고종후(高從厚)와 함께 다시 의병을 모아 진주성으로 달려갔다. 그 해 8월, 총병력으로 공격해 오는 왜군과 처절한 혈전을 벌이다가 끝내 성이 무너지려 하자 판결사 김천일(金千鎰), 동료 고종후와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뒤에 병조참의에 증직되고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