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 조선 전기 진안 출신의 의병. 호는 남은(南隱). 좌복야(左僕射) 함양군(咸陽君) 오광휘(吳光輝)의 후손으로 좌랑(佐郞) 오세득(吳世得)의 손자이며 순릉 참봉(順陵參奉) 오인수(吳麟壽)의 아들이다.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남다른 덕행과 효성, 학문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대를 조직하여 곧바로 금산의 의병진에 이르렀으나, 당시 창평현(昌平縣)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먼저 고경명(高敬明)의 진영에 와 있던 사촌형 오빈의 만류로 귀가하였다. 오형은 벽계(碧溪)의 선영으로 돌아와 노모의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때마침 왜병(倭兵)이 쳐들어와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태연히 기운을 가다듬고 꾸짖으니 왜병도 의롭게 여기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그 후 사위 신담(申湛)과 더불어 학문에 정진하며 지냈다.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대한이산묘지』(진안문화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