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승길(元升吉)
운영자 23-12-18 18:44 621 hit
?~1636.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중기 의병. 자는 평중(平仲), 호는 남계(南溪). 증조부는 이조판서를 지낸 원계검(元繼儉)이고 조부는 승지를 지낸 원호영(元虎英)이고 아버지는 충의공(忠毅公) 원성모(元成模)이다. 성품이 근실하고 겸손하였으며, 이홍주(李弘冑)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일찍부터 문무를 익혔다. 1636년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원승길은 아버지와 동생 원이길(元頤吉)과 더불어 종실 영가군(永嘉君)과 협력하여 의병을 이끌고 분전했다. 형세가 불리하자 안산을 버리고 덕물도로 들어갔으나 청군의 화공(火攻)을 받아 세 부자가 순절하고 말았다. 부인 능성 구씨(綾城具氏)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부인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쏟아지는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따라 죽기로 맹세하였으나, 아들 광옥(光玉)이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를 위에서 감싸고 통곡하니 적도 의롭게 여겨 함부로 하지 않았다 한다. 구씨는 남편의 장례를 마친 후 아들을 데리고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로 와서 살다가 세상을 마쳤다. 이후 자손들이 진안과 장수 등지에 널리 퍼져 큰 성씨를 이루었다. 묘는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이진리[현 시흥시]에 아버지 원성모의 묘소 왼쪽에 있으나, 진안으로 내려온 구씨의 묘는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설암산(雪巖山)에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자손들의 상소를 받은 조정에서 무과선전관훈련도정 이조참의 증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贈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 좌찬성 원릉군(原陵君)으로 추증하였다. 원승길 신도비(←원승길 신도비문)가 상전면 용평리 대구평 마을에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