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1926. 의원(醫員). 상전면 수동에 살았던 그는 명의로 전해온다. 처음 정천면 모정리 두곡에 살던 당시 난산의 산모에게 밤 한 톨을 달여 먹게 해 순산시켰다 한다. 병든 사람이 약국에 와 앉아있는 자리를 보고 처방을 해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무료로 약을 주고 부유한 사람에게도 재료값 이외에는 받지 않았다 한다. 그가 죽을 무렵 아들에게 부자가 되고 싶은가 큰 인물이 되고 싶은가 물어 아들이 부자가 되고 싶다 하니 대문을 서쪽으로 고친 뒤 죽었다 한다. 그 뒤 3천석을 하게 된 아들 유정석(劉井錫)이 선대의 약업을 번성시켜 한때 전주시 한의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