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종(尹紹宗)
운영자 23-12-18 18:44 600 hit
1345~1393. 고려 후기 용담현령으로 재직했던 문신. 자는 헌숙(憲叔), 호는 동정(桐亭). 고려 시대 성리학을 익힌 윤택(尹澤)의 손자이다. 5대조 윤량비(尹良庇)는 호장 출신이었고 4대조 윤해(尹諧)는 과거에 합격하여 가문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버지는 윤귀생(尹龜生), 윤회(尹淮)가 아들이다. 1360년에 성균시에 합격하고, 1365년 이인복과 이색(李穡)이 주관한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365년 예부시에 을과 제1인으로 춘추수찬(春秋修撰)을 제수받았다. 예부산랑에 이어 1373년 좌정언이 된 그는 공민왕에게 개혁 상소를 올렸다. 6조항에 걸친 장문의 상소는 성리학 이념에 충실한 사대부 의식을 보여주었다. 1379년 전교시승(典校寺丞)·전의부령(典儀副令)·예문응교 등을 지내고 1386년 성균사예로 기용되었다. 1388년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에 동문 밖에 나가 영접하고 곽광전(涇光傳)을 바쳤다. 그것은 우왕을 폐하고 다른 성씨를 왕으로 추대할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 뒤 전리총랑(典理摠郎)이 되었고 이어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로 승진하였다. 1389년 이인임(李仁任)의 죄를 논해 참관저택(斬棺瀉宅)을 청했으며, 이어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다. 1390년 12월 좌상시가 되고 그해 2월 정월 경연 강독관이 되었다. 창왕 및 공양왕 대에는 조준과 결합하여 현실을 개혁하는 개혁상소를 올렸다. 조선 건국 후에는 원종공신이 되었으며 『고려사』의 편찬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용담현령으로 재직하던 당시 이색과 함께 용담향교에 관련한 시를 지었다. 시문집으로는 『동정집』 8권이 있었지만 현존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절요』에 윤소종의 작품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