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응남(尹應南)
운영자 23-12-18 18:44 598 hit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 중 한 분. 자는 명서(明瑞), 호는 만헌(晩軒). 문경공(文景公) 윤신갑(尹莘甲)의 후예로 증지돈녕부사(贈知敦寧府事) 용원군(龍原君) 윤대희(尹大希)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힘이 남달라 병가서(兵家書)를 통독하였고, 무과에 올라 벼슬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왕이 의주로 피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형 윤응인(尹應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왕을 호위할 목적으로 진군하였다. 전주 웅치(全州熊峙)에서 동복현감 황진(黃進)과 함께 왜군 백여 명을 죽이고 전선을 돌파, 어가(御駕)를 의주로 호위하는 데 공적을 세웠다. 선조는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선무원종공신이등(宣武原從功臣二等)으로 책록하였다. 오당(珸堂) 이상수(李象秀)가 지은 묘표(墓表)가 있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