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홍재(弘宰), 호는 귀락당(歸樂堂). 문성공(文成公) 이명성(李明誠)의 후예로 도사(都事) 이현산(李賢山)의 아들이다. 1567년에 사마시(司馬試)에 올라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재은 참봉(齋隱參奉)이 되었다. 1570년 을사사화 때 화를 당했던 좌의정 유관(柳灌), 이조판서 유인숙(柳仁淑)의 복권 노력이 있었는데 이광필 또한 연명 상소에 동의하면서 사림을 보호하려 노력하였다. 1583년에 함경도 경흥부사(慶興府使)로 나가 1월부터 7월까지 여진족의 침입(「니탕개의 난」)을 평정했다. 이 공로로 온성부사(穩城府使) 신립, 부령부사(富寧府使) 김의현, 유원첨사(柔遠僉使) 이박 등과 함께 관서백(關西伯)에 제수되었다. 이후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