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산(李貴山)
운영자 23-12-18 18:44 654 hit
?~1424.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초기 문신. 자는 흥서(興瑞), 호는 괴은(槐隱, 塊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 부친은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다. 아들로 이속(李續)을 두었다. 좌의정 이귀령(李貴齡)의 동생이다. 태조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410년에 한성윤(漢城尹)으로 이른바 ‘천추절(千秋節)’ 사절로 명(明)에 다녀왔다. 1413년에 경성수보도감(京城修補都監) 제조(提調)가 되어 군조(軍調)를 수축(修築)하고, 경기, 충청, 경상, 전라, 강원, 풍해에 ‘10만 양병(十萬養兵)’을 제안하는 등 새로운 법을 많이 창안하였다. 1414년에 경상도 도관찰사, 1415년에 개성부 유후(開城副留侯)에 이어 강원도 도관찰사 등, 벼슬이 형조와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이르렀다. 만년에 용인 구수동으로 물러나 두 그루의 괴목(槐木)을 심어 스스로 괴은(槐隱)이라 하며 은둔하였다. 묘갈은 1831년에 다시 세워졌으며, 비문은 19세손 이의덕(李義悳)이 짓고 17세 방손 이병욱(李炳勗)이 썼다.《참고문헌》 『대한이산묘지』 (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