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호조참판 홍습(洪濕)의 사비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전면 수동리 산정마을에도 왜군이 밀어닥쳤다. ‘충비열녀 이성난향지려(忠婢烈女李姓蘭香之閭)’에 의하면 “당시 마을에는 난을 피해 서울에서 내려왔던 참판 홍습(洪濕)이 있었는데,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재 너머 깊은 산중까지 피신하였지만 서두르는 바람에 식량을 준비하지 못해 끼니를 걱정할 처지였다. 주인 가족의 어려움을 보다 못한 난향이 식량을 구하려고 야음을 틈타 마을에 내려왔으나 홍습의 집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어디서도 쌀 한 톨 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갑자기 마을을 순찰하던 왜군들에게 붙잡혔다. 난향은 왜군들에게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했으나 끝내 주인이 있는 곳을 고하지 않았고 욕을 당하기 전에 혀를 깨물어 자결하였다.”고 한다. 1604년에 명정(命旌)을 내렸다.《참고문헌》 『진안의 금석문』(진안문화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