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1949. 일제강점기의 유학자·관원. 일찍이 궁내부(宮內府) 판임관(判任官)을 지냈다. 호는 수당(守堂)·추운(鄒雲).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岹)의 11대손이고 증 사헌부지평 이홍(李泓)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증 동몽교관 이희식(李希植)이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송병선(宋秉璿)·송시열(宋時烈)의 학풍을 이어 받았으며 전우(田愚)와도 교유하였다. 1910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낙향하여 주천면 대불리 개화동에 화양도원[대불초등학교(폐교)의 전신]을 열고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1919년 고종 승하를 맞아 화양산에서 제사지낸 이후, 1922년 순종이 ‘삼극사(三極使)’로 임명하자 화양산 정상과 전국 6개소에 ‘황단(皇壇)’을 설치하여 국태민안과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삼극제를 매년 음력 8월 29일 정오에 지냈다. 삼극이란 ‘천극(天極), 지극(地極), 인극(木極)’으로서 각각 ‘옥황상제, 공자, 고종’ 등 3위(位)를 말한다. 1922년에는 유림건약(儒林建約) 십삼도(十三道) 도강원(都講院)으로부터 13도(道) 도순강장(都巡講長)에 임명되어 전국을 순방하면서 학문에 전념하는 인재를 구하여 전통적인 유교정신과 배일사상을 기르고, 삼부강의문(三府講義文)을 통하여 우국충정을 역설하였다. 체계적인 저서는 남기지 않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