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감(金鑑)
운영자 23-12-18 18:44 646 hit
1566~? 조선 중기의 문신.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의 하나. 자는 중허(仲虛), 호는 입택(笠澤). 고려 참정 금주군 김신(金侁)의 후예이며, 金成元(김聲遠)의 아들이다. 158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12년에는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시강원 설서를 거쳐 1617년 성절사서장관(聖節使書壯官)으로 연경[북경]에 다녀왔으며, 경상 도사, 강원도 관찰어사, 평안도 진무어사, 강원도 안찰어사, 영호양도 도제독관(嶺湖兩道 都提督官)을 역임했다. 홍문관 교리(校理)로 있을 때 병자호란을 당하여 곡성창의사(谷城倡義使)로 500여 명의 의병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군해 갔다. 그러나 청주에 이르러 왕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왔다. 1639년에 이조참의가 내려졌으나 노병(老病)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