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金慶元)
운영자 23-12-18 18:44 620 hit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의 하나. 자는 선여(善汝), 호는 노은(魯隱).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稇)의 후예로 군자감정(軍資監正) 김인수(金仁壽)의 손자이다. 타고난 바탕이 탁월하고 총명하였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였다. 또 부모 봉양의 예(禮)를 극진히 하였으며 삼년상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노산(魯山) 아래에 집을 짓고 주자서(朱子書)를 모두 암송하였다. 평소 그가 지켜 온 학문적 태도는 실천을 주로 한 것으로 언제나 “사람의 자식 된 도리는 효(孝)에 더한 것이 없고, 신하된 도리는 경(敬)에 더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송준길(宋竣吉)은 그의 깊은 학문과 높은 뜻을 칭송하여 ‘月明魯山, 風淸石溪’(노산에 뜬 밝은 달, 석계에 부는 맑은 바람)라 하였고, 조정에 천거하여 주부(主簿) 벼슬이 제수되었고, 다시 지평(持平), 공조참의(工曹參議), 좌윤(左尹) 등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