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李奉昌)
운영자 23-12-18 18:44 628 hit
1900~1932.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의사(義士).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34위 중 한 분. 서울 용산 문창보통학교(文昌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형 이범태(李範泰)와 같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大阪)’에서 철공소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타(木下昌藏)’로 바꾼 뒤 ‘도쿄’와 오사카 등지를 전전하면서 노동 등의 막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일제의 침략으로 한민족의 생계가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 1931년 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큰일을 수행할 것을 다짐하고 상해로 건너갔다. 김구(金九)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시키고 이봉창의 소신대로 일본 왕 폭살 계획을 추진하였다. 1931년 12월 13일 안중근(安重根)의 막내 동생 공근(恭根)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식을 마친 후 곧 일본 동경으로 향하였다. 1932년 1월 8일 일본왕 ‘히로히토(裕仁)’가 만주국 황제 부의(溥儀)와 도쿄 ‘요요기(代代木)’연병장에서 관병식을 할 때, ‘사쿠라다몬(櫻田門)’ 앞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히로히토를 향하여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히로히토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그 해 10월 비공개 재판에서 전격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이치가야’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