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진(李尙眞)
운영자 23-12-18 18:44 605 hit
1614~1690. 조선 중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학자. 자는 천득(天得), 호는 만암(晩庵). 시호는 충정(忠貞). 증조는 부윤 이정란(李廷鸞), 조부는 이종길(李遵吉), 부친은 참봉 이영선(李榮先)이다. 자손으로는 이우하(李宇夏)가 있다. 164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52년 사헌부 지평으로 있을 때 국가의 제반 사항을 논리정연하게 논평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다. 1654년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 당시의 시사를 여러 차례 직언하였다. 헌종 때에는 이조참판, 대사간을 역임하고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다. 당시 영남에서는 대동법(大同法)이 아직 시행되지 않아 정무가 매우 번거로웠다. 감사로 부임하여 대동법으로 일어난 송사 판결을 신속하고 조리 있게 처결해 송옥(訟獄)을 종식시켰다. 우수한 인재를 뽑아 쓰고 탐관오리를 숙정하고 선정을 베풀어 목민관으로 칭송이 도내에 자자했다고 한다. 1678년에 이조판서,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80년 판중추부사로 옮기게 되었다. 1689년 인현왕후 폐위의 부당함을 간언하다가 종성·북청·철원 등지로 귀양을 갔다. 이후 소결(疏決)로 용서되어 부여의 옛집에서 우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뒤 숙종은 과거를 후회하고 그의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진안지』에는 “진안읍 연장리에 살았고, 훈련대장 전동흘(全東屹)과 친구였다”고 전한다. 1695년 청백리(淸白吏)에 선출되었다. 전주에 장보사원(章甫祠院)을 세우고, 1708년 북청에 있는 이항복(李恒福)의 사당에 함께 제사지내게 하였다. 1694년에 한계서원에 추가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명재유고(明齋遺稿)』,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진안문화원, 2004), 『국역 국조인물고』(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