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징(李義徵)
운영자 23-12-18 18:44 625 hit
1643~1695. 조선 중기 진안현감을 지낸 문신. 자는 대숙(大叔). 임영대군의 7대손이며 판서 이응시(李應蓍)의 아들이다. 조부와 부친의 공덕으로 음관(蔭官)에 천거되어 진안현감이 되어 1676년에 부임하였다. 1681년 9월에 암행어사로 내려온 오도일(吳道一)의 추천으로 양리(良吏)로 뽑혀 관직이 특승되었다. “향리[아전]들은 두려워하고 백성은 평안했다”고 『진안지』에 전한다. 이어 남원부사로 전임하여서는 가뭄이 들면 농사를 못 짓는 오수방에 보를 막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였다. 사람들이 감복하여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1689년 호조참의에 제수되었다. 이듬해에 충홍도[현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수원부사가 되었다. 1691년 지방행정관으로서 행한 선정을 인정받아 호조참판으로 승직되었고 1692년에 공조판서, 1693년 한성부판윤을 거쳐 훈련대장이 되었다. 1693년 국방 대책으로 통진(通津)[현 경기도 김포시] 문수산(文殊山)에 성을 쌓았다. 1694년 지의금부사가 되어 옥사를 공정히 다루었으며 다시 훈련대장이 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보복적인 탄핵을 받아 절도(絶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이듬해에 사사(賜死)되었다. 1908년 3월 누명이 벗겨져 복권되었다. 《참고문헌》 신종우의 인명사전(http://www.shinjongwoo.co.kr/), 『숙종실록(肅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