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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550년대 이전에 재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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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진안군수. 1948. 12. 24 부임하여 1950. 5. 6까지 1년 5개월간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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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782년 11월에 부임하여 1785년 4월 이천으로 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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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896년 8월에 부임하여 1897년 5월 여산으로 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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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689년 3월에 부임하여 1689년 4월 전주판관으로 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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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641년 2월에 부임하여 1646년 1월에 이임하였다. “바른 말만 들었다”고 『鎭安誌』에 전한다.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진안문화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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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161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 중 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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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856년 7월에 부임하여 1857년 12월 진천현령과 맞바꾸어 이임하였으나 전직 때의 일이 문제되어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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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717년 2월에 부임하여 1717년 9월에 이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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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708년 8월에 부임하여 1712년 6월 파직되었으나 읍민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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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853년 2월에 부임하여 1855년 2월 문의로 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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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588년에 부임하였다. 1594년 왜구가 안음으로부터 쳐들어와 백성들을 살륙, 약탈하므로 백성을 이끌고 적을 맞아 싸워 적을 목 벤 수가 백여 급이었다. 이 공로가 조정에 올라가 승진되어 간 뒤 읍민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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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662년에 부임하여 1662년 12월 상을 당하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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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진안군수. 1973. 2. 29. 부임하여 1975. 6. 12.까지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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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1932.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34위 중 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