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0~1756.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호는 노암(老巖). 임타(林㙐)의 증손자이고 임만유(林晩儒)의 손자이다. 임윤(林潤)의 아들이며 임호진(林濠鎭)의 증조부이다. 상전면 용평리 평은마을에서 태어났다. 임타가 상전면 와은리에 내려와 은거하며 지은 만화정(萬花亭)이라는 정자에서 평생 학문과 시작(詩作)으로 살았다. 학문이 뛰어나 진안에서 일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치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송성담(宋性潭, 이름은 煥基)도 임취업의 문집을 보고 “문장사율(文章詞律)은 임영(林泳)과 동등하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노암문집(老巖文集)』5권, 『효행유고(孝行遺稿』5권 등이 있다. 시는 「과만화정구지(過萬花亭舊地)」가 전한다. 《참고문헌》 『진안군사』(진안군사편찬위원회,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