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1627. 자는 휘원(輝遠), 호는 이산(駬山). 문평공(文平公) 전문식(全文軾)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전규(全奎)이고 아버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전수함(全守艦)이다. 전대승이 진안읍 가림리 은천마을에 내려와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은천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대한이산묘지』에 의하면 “풍채가 준수하였고 뜻이 매우 높아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재로 평가받았다. 정유재란 때 전수함이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남해 노량진(露梁津)에서 왜적을 크게 부수고 전사하였는데, 이로 인해 전대승은 항상 외적(外敵)에 대한 복수심을 지니고 있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거느리고 평양에서 적을 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 전투 중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고 전한다. 병조참판에 증직(贈職)되었고, 숙종 때 예조판서에 가증(加贈)되었다. 《참고문헌》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대한이산묘지』(진안문화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