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중기 의병. 자는 백언(伯言), 호는 우재(愚齋). 문평공(文平公) 전문식(全文軾)의 후예로서 전계종(全繼宗)의 손자이다. 병자호란 때 서울을 지키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벌여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응철은 이흥발(李興渤), 이기발(李起渤), 최온(崔縕), 양만용(梁曼容), 유즙(柳楫) 등이 함께 내놓은 격문을 보고 분발하여 의병에 참가하였다. 사촌 동생 전응종(全應鍾), 정동협(鄭東俠), 신성식(辛成式) 등과 함께 각지의 의병과 가동 수백 명을 이끌고 경기도 과천(果川)까지 진군하였으나, 이미 조선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순릉 참봉(順陵參奉)에 천거되었다. 자세한 사적은 『창의록(倡義錄)』에 적혀 있다. 《참고문헌》 『대한이산묘지』(진안문화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