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1931. 우국지사.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청사(晴沙). 문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다. 증조는 사성(思聲), 조부는 석기(奭基), 부친은 종협(鐘協)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910년부터 망국의 한을 품어오던 중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전영상(全永祥)·오기열(吳基烈) 등과 함께 군중을 모아 마령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일본군에게 체포된 전영상을 마령면 강정리 주재소를 습격하여 구출하였다. 후에 회덕전(懷德殿)과 이산사(駬山祠)를 창건하고 친친계(親親契)를 조직하였으며, 군지(郡誌)와 도지(道誌)의 발행 사업에 종사하였다. 이도복(李道復)이 만사(輓詞)를 지어 애도하였고, 사위 이상녕(李湘寧)이 묘표를 지었다. 《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