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서(金晩緖)
운영자 23-12-18 18:44 612 hit
1421~1495.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자술(子述), 호는 오매당(寤寐堂).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민의공(敏懿公) 김사이(金思頤)이다. 1438년(세종 20)에 과거에 급제한 후 안렴사(按廉使)를 지내면서 균공법(均貢法)을 건의하였고, 『용비어천가』를 지었으며, 문종 때에는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진법(陳法)을 마련하여 올렸다. 1453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임명되었는데 장인 황보인(皇甫仁) 등이 수양대군이 일으킨 정변[계유정란]으로 살해되자 벼슬을 버리고 전주로 내려와 이후 3년 동안 은둔했다. 다시 1456년에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여러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사륙신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심정적으로 동정하여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에 은둔하였다. 당시 관찰사였던 이석형(李石亨)이 ‘자나 깨나 (옛 주군을) 잊지 않는다’는 뜻의 ‘오매당(寤寐堂)’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1882년에 병조판서 조영하(趙寧夏)가 지은 묘갈명이 남아 있다. 그를 배향한 재각 역시 오매당(寤寐堂)이라 부른다.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