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1657.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의병. 자는 개부(蓋夫), 호는 모와(慕窩). 대사성 정곤(鄭坤)의 7세손이며 상호군(上護君) 정건(鄭健)의 아들이다. 외증조부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열심히 공부하여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나라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숙부 충청도관찰사 정세규(鄭世規) 및 둘째 아들과 함께 가동(家童) 수 십 명으로 의병을 일으키고 전응철(全應哲)·전응종(全應鍾)·신성식(辛成式)과 더불어 군량을 모아 여산(廬山) 모의소(募義所: 의병모집소)로 갔다. 다시 과천까지 행군하였는데 이미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왔다. 그 후 전라도 관찰사 이시방(李時昉)의 천거로 예빈시 정(禮賓寺正), 사복시 정(司僕寺正)이 제수되었으나 거절하였다. 사적이 『호남절의록』에 쓰여 있으며, 한기유(韓起愈)가 지은 행장(行狀)이 전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대한이산묘지』(진안문화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