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엽(鄭鍾燁)
운영자 23-12-18 18:44 656 hit
1885.03.13.~1940.11.01. 일제강점기 진안의 학자. 자는 택신(宅新), 호는 수당(修堂). 정진희(鄭鎭喜), 정진용(鄭晉鏞)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증조부는 정수세(鄭需世), 조부는 정인민(鄭寅敏), 부친은 정성모(鄭聖謨)이다. 유학자로서 학문을 연마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항일의병 투쟁에도 적극 나서서 학행일치(學行一致)의 삶을 살았다. 성수면 좌포리에서 태어났고, 전우(田愚)와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힘써 연마하였다. 나라가 망하자 은둔의 삶을 살았다. 이후 이병연(李炳淵), 전인권(全麟權) 등과 함께 이석용(李錫庸)과 전기홍(全基泓) 등이 의병을 일으키는 데 협력하였다. 1911년 진안에서 이석용에게 군자금을 지원하였으며, 1912년 이석용이 의병 활동의 재개를 위해 조직한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에 가입하여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였다. 또한 이석용의 종군기록인 『창의일기』가 일본 경찰에게 빼앗길 우려가 있자 그 책을 자기 집에 보관하여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그 뒤 이석용이 일경에 붙잡히자 정종엽은 일경을 피하여 수시로 개명하고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어려운 삶을 살았다. 말년에는 마령면 계남리 선산 재각인 도장각(←道藏閣)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수당유고(修堂遺稿)』가 있다. 2011년 진안문화원에서 번역한 『국역 수당유고』가 출판되었다. 2003년 8월 15일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현재 내산사(萊山祠)에 향사(享祀)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당유고(修堂遺稿)』, 『진안지』(진안향교, 1925), 『진안군 문화재 지표조사보고서』(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89), 『진안의 금석문』(진안문화원, 2001), 『전라북도 금석문 대계』2(전북역사문화학회, 2008), 『전북지방의 선정·공적·기념비』(한국문화원연합회 전북도지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