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 중 한 분. 호는 양성헌(養性軒). 신라육부장(新羅六部長) 지백호(智伯虎)의 후예로 고려조 문하시랑(門下侍郞) 월성 부원군(月城府院君) 문성공(文成公) 정혼(鄭琿)의 아들이다. 천성이 효우(孝友)하였고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대호군(大護軍)에 올랐다. 뒤에 최영(崔瑩)의 막료가 되어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를 지냈다. 그 후 문하평리 겸 응양위상장군(門下評理兼應揚衛上將軍)으로 있다가 조선 개국의 공으로 순충분의 좌명개국공신(純忠奮義佐命開國功臣) 대광보국 숭록대부 판예조 겸 문하시중 첨의찬성 도평의사사 도총부도총관(大匡輔國崇祿大夫判禮曹兼門下侍中僉議贊成都評議司事都摠府都摠管)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올랐다. 우의정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양경(良景)’이고 특별시호는 ‘무열(武烈)’인데, 그 뜻은 “온량으로 덕을 좋아하였음을 良이라 하고 의로써 백성을 구휼한 공을 景이라 한다.”고 하였다. 조정에서 예장(禮葬)하록 하였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