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세(趙秉世)
운영자 23-12-18 18:44 641 hit
1827~1905. 한말의 문신, 순국열사.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34위 중 한 분. 자는 치현(穉顯), 시호는 충정공(忠正公), 호는 산재(山齋). 현감 조유순(趙有淳)의 아들이다. 음관(蔭官)으로 참봉에 임명되었고, 1859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1893년 좌의정이 되었으나 이듬해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 큰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일제의 침략이 가속하여 세상이 어지럽자 가평에 은퇴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처형을 주청하려 하였으나 일본군의 방해로 고종과의 면담이 좌절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참정(參政) 심상훈(沈相薰),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민영환(閔泳煥), 이근명 등과 함께 입궐하여 “을사늑약의 무효, 5적신의 처형, 새로 충량한 인재를 뽑아서 외부대신에 임명하고 각국 공사와 협의하여 5조약을 파기할 것” 등을 연소(聯疏)하다가 일본군에 의하여 강제로 해산당하고 표훈원(表勳院)에 연금되었다. 곧 방면되었으나 다시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석고(席藁)하며 을사늑약의 파기를 주장하다가 또다시 일본 헌병에게 강제로 연행되었다. 특명으로 풀려난 뒤 비분을 참지 못하여 자결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