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잠(朱潛)
운영자 23-12-18 18:44 710 hit
1194~1260. 고려 후기 남송에서 귀화하여 진안에 은거한 학자. 본관은 중국 신안(新安), 호는 청계(淸溪). 증조는 주희(朱熹)이고 조부는 주야(朱埜), 부친은 주거(朱鋸)이다. 아들은 주여경(朱餘慶)이고 손자는 주열(朱悅)이다. 중국 하남성 낙양시 신안현에서 태어났다. 남송의 과거에 급제한 이후 한림학사(翰林學士)와 태학사(太學士)를 거쳐 관직이 비서각직학사(秘書閣直學士)에 이르렀다. 그 후 점차 국운이 쇠하던 남송이 원(元)의 침공으로 멸망하자 1212년 가족과 문인들인 도성하(陶成河)·두행수(杜行秀)·섭공제(葉公濟)·유응규(劉應奎)·조창(趙昶)·주세현(周世顯)·진조순(陳祖舜) 등 7명의 학사(學士)들을 이끌고 고려로 피신하였다. 처음에는 전라도 금성[錦城 : 현 나주시]에 거주하였다가, 얼마 뒤 원의 세조가 고려로 피신한 송의 구신(舊臣)들을 압송하려 하자 다시 전라도 능성[綾城 : 현 화순군]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적덕(積德)으로 바꾸었다. 이후 다시 무주 무풍면(茂豊面)을 거쳐 진안군 주천면 신안촌(新安村)에 은거하다가 1260년 사망하였다. 주천면 주양리의 주천서원(朱川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세창서관, 1970),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진안군사』(진안군사편찬위원회, 1992), 『전북향교원우대관』(전라북도향교재단,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