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칠(崔斗七)
운영자 23-12-18 18:44 746 hit
1683~1756.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문인. 자는 자건(子建), 호는 추모재(追慕齋). 충익공(忠翼公) 최양(崔瀁)의 후손이다. 조부는 최진(崔璡), 부친은 최이관(崔以官)이다. 아들은 현위(玄暐), 현휘(玄暉), 현요(玄曜)이다. 증조부 최종(崔琮)이 세조의 찬위를 보고 벼슬의 뜻을 버리고 진안으로 들어와 숨어 산 이후로 마령면 평지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송명흠(宋明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심경』, 『근사록』, 『사자소학』, 『중용』, 『대학』에 이르기까지 숙독하여 천리와 인성에 대해 궁구하였다. 도덕심과 정의감이 강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여 큰 흉년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키워서 혼인까지 시키기도 했다. 학행이 세상에 드러났으며 뛰어난 덕을 지닌 이들이 그 문하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최두칠은 중앙 정계에서 벼슬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사회에서 학문과 효행으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진안군 일대에는 지금도 최두칠과 그 선조 최양에 관한 설화들이 유전되고 있음을 볼 때, 평지리 원평지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병승(閔丙承)이 글을 짓고 김영한(金寗漢)이 전액(篆額)을 쓴 묘비명이 있다. 1879년에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추증되었다. 마령면 원평지 용계사(←龍溪祠)에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鎭安誌(진안향교, 1925),『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진안군·진안문화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