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유(崔士柔)
운영자 23-12-18 18:44 710 hit
1372~1455. 조선 전기의 문신. 『동국여지승람』 <용담현>편에 ‘명환(名宦)’으로 실려 있다. 자는 휘지(徽之). 선보(善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자충(崔子忠)이고,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典書) 최윤문(崔潤文)이다. 1399년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0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09년에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1414년에 장흥고사(長興庫使)가 되었는데, 이 때 질이 나쁜 종이를 납궐(納闕)한 죄로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1432년에 사간원좌헌납(司諫院左獻納)이 되었다. 이듬해 상정색녹사(詳定色錄事) 한유린(韓有隣)과 책봉도감녹사(冊封都監錄事) 허완(許完)에게 7등급을 초과하여 참직(參職)을 제수하자, 3등급을 초과할 수 없는 초천법(超遷法) 규정을 들어 이의 시정을 상소하였다. 누천(累遷)하여 성균관 사예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퇴거하여 경사를 읽으며 세월을 보내다가 뒤에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담현 명환(名宦)조에 그의 이름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사유가 진안 출신은 아니고 용담현령을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최항이 지은 「최사유 행적」에 “두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신증동국여지승람(관찬지리서, 153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조선왕조실록』,『문과방목』, 『조선명신록』, 『국역국조인물고』(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