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1~1424. 고려 말 조선 초기 진안의 문신. 자는 백함(伯函), 호는 만륙(晩六)·장륙당(藏六堂). 부친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최지(崔贄)이다. 14세에 외숙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376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이부상서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384년 예문관 직제학으로 재임하던 중 서북면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를 도와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후 대사간과 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하였다. 1392년 정몽주가 순절하자 벼슬을 내놓고 백운면 중대산[中臺山:현 팔공산]으로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395년 태조가 사람을 보내 국정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면서 관직과 전록(田祿)을 하사했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이후 그의 선산이 있는 완주군 소양면 대승리로 옮겨 만년을 보냈다. 저서로는 『만륙일고』가 전해지고 있다. 마령면 강정리의 영계서원(靈溪書院)과 전주시의 서산사(西山祠)에 배향되었으며, 1834년에 충익(忠翼)의 시호가 내려졌다. 백운면 반송리에 그를 기리는 구남각이 있고 안에 비를 세웠다. 비에는 기정진(奇正鎭)이 찬한 둔적유허비명이 새겨져 있다. →구남각.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륙일고(晩六逸稿)』, 『전주 최씨 문충공 자손 대동보』, 「만륙 최선생 행장」,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완주군사』(완주군사편찬위원회, 1987),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전북 향교원우대관』(전라북도향교재단, 1994), 한국 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