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학(崔濟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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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03.17.~1961.05.15.) 일제강점기 진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중열(仲悅), 호는 습재(習齋). 아버지는 지은(芝隱) 최성호(崔成鎬)이다. 성수면 도통리에서 태어났다. 이기회(李起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96년부터 최익현(崔益鉉)·전우(田愚)·송병선(宋秉璿)·기우만(奇宇萬) 등 당대 대학자의 문하에 출입하였으나, 최익현을 흠모하여 사제의 의를 맺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방책을 모색하였다. 1906년 4월 최익현·임병찬(林秉瓚) 등과 함께 정읍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거(義擧)하였다. 이때 참모직을 맡아 의병소집 및 군비(軍備)편성 등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4개월간 감금 당하였다. 출옥 후 대마도로 최익현을 찾아가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끝내 최익현이 순국하자 부산으로 운구(運柩)하여 장례를 극진히 치렀다. 그 뒤 고향에 돌아와 윤자신(尹滋臣)과 함께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후로는 두류산(頭流山:지리산)을 오르내리며 통한의 시간을 보내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靑岩面) 학동(鶴洞)으로 옮겨 은둔 생활을 하였다. 『습재실기(習齋實記)』가 1963년 석판본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그는 또 일찍이 화가를 시켜 최익현의 초상화 2장을 그리게 하였던 바, 1장은 경찰에 빼앗겼고 1장은 장진욱에게 보관하라 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집안에 있는 삼우당 터에 최익현의 영당을 짓기 위함이었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만년에는 최익현의 사적을 수집하고 그것을 보완하여 『일성록』이라 이름 지었으며, 또 성묘도(聖廟圖)라는 책을 편술하였다. 1988년 ‘애국지사 습재 제학 선생 기념비(愛國志士習齋濟學先生紀念碑)’가 성수면 도통리 목동마을에 건립되었다. 1990년에 국민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습재실기(習齋實記)』, 『매천야록(梅泉野錄)』, 『진안향교지』(진안향교, 1989), 『진안군사』(진안군사편찬위원회, 1992), 『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 보고서』(진안문화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