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9~1830. 조선후기의 시인·유학자. 자는 청서(淸瑞), 호는 담락당(湛樂堂), 남원 서봉방(捿鳳坊)에서 출생. 영의정 하연(河演)의 12세손이다. 경기도 안산(安山)에서 세거했으나 후에 진안으로 이주하였다. 또한 명종 때 송구봉(宋龜峰) 등과 함께 ‘8문장’의 한 사람이던 7대조 하응림(河應臨)이 교리(校理)를 지낸 외에 증조부 하경윤(河慶潤), 조부 하한징(河漢澄), 부친 하경천(河經天) 등은 벼슬 없는 생을 보냈다. 유교정신의 규범 속에서 전범적인 사도(士道)를 지켜온 가풍은 부친 하경천의 <계자시(戒子詩)>, <효제충신예의염치음(孝悌忠信禮儀廉恥吟)>, <충효교자문(忠孝敎子文)>, <교자십삼조(敎子十三條)> 등에서도 알 수 있다. 하립은 1786년 18세 되던 해,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한 김일손(金馹孫)의 후손 인혁(仁赫)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결혼, 부부시인으로 해로하였다. 8년간(1788~1796) 한양에서 면학할 당시 심상규(沈象圭)의 집에서 유숙하였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박학다문의 기회가 있었으나 과거에는 실패하고, 귀향하여 부모를 시봉하였다. 청빈했던 가세를 일으키고자 1801년 12월 마령면 방화리(訪花里)로 이주하였다. 하립의 5형제, 즉 독락당(獨樂堂) 하호(河灝), 이락당(二樂堂) 하준(河濬), 담락당(湛樂堂) 하립, 우락당(友樂堂) 하식(河湜), 화락당(和樂堂) 하봉(河氵鳳) 등이 모두 시문에 능하였다. 이는 1791년 6월 부친의 생일에 5형제가 모두 헌송시(獻頌詩)를 지어 읊었다는 기록을 보거나, 1806년 <제만취정(題晩趣亭)>의 시제(詩題)를 놓고 5형제가 같은 운(韻)을 써서 시창작을 했던 점을 보아도 짐작할 만하다. 부인 삼의당과 결혼 첫날밤부터 시문으로 화답(和答)하였던 것도 이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이다. 자녀는 1남 3녀를 두었으나 장녀와 3녀는 일찍 사망하였다. 부부는 사후(死後)에 백운면 덕현리(德峴里) 한 무덤에 안치되었다. 문집으로 『담락당집』이 있는데, 이중에서 시집인 『담락당운집(湛樂堂韻集)』은 『담락당시집』이라는 제호로 2000년 진안문화원에서 발행하였다. 1984년 ‘담락당하립·삼의당김씨부부시비’가 마이산 탑영제(塔影堤) 옆에 세워졌다. →김삼의당. →담락당·삼의당 부부시비. →담락당시집. 《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 이명래 역 『담락당시집』(진안문화원, 2000), 이월영 『삼의당 김부인 유고』(신아출판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