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6~1453. 조선 초기의 문신. 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 중 한 분.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 부윤 하자종(河自宗)의 아들로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9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상시 녹사를 거쳐, 직예문 춘추관 수찬관(直藝文春秋館修撰官)이 되고, 이어 집의와 동부대언(代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태종은 그가 간관(諫官)으로서 의연히 간하는 태도를 치하하였다 한다. 세종대에 예조판서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며, 142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나 한 때 천안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 형조와 병조의 참판을 거쳐 1431년 대제학이 되었다. 그 뒤 대사헌·형조판서·좌참찬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고, 이어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1449년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으로 있던 1451년에 문종이 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고 벼슬을 사하였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 『진양연고(晉陽聯藁)』가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