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 인품이 준수하고 강개심이 있었으며 문장이 아주 능했다고 한다. 1907년 9월 12일 이석용의 호남의병창의동맹단에 가입하여 전기홍(全海山)·이광삼(李光三) 등과 함께 참모가 되었고, 전기홍과 함께 진중의 일을 기록하는 ‘기실(記室)’의 임무도 맡았다. 그 후 6개월 동안 여러 유격전투에서 참모로서 지략을 다하였다. 1908년 3월 21일 운현(雲峴)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일본군 토벌대의 기습을 받아 16명과 함께 순절하였다. →의병활동과 진안. 《참고문헌》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진안문화원, 200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tp://encykorea.aks.ac.kr/), 『전북의병사』 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