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청여(1863.06.04.~1935.03.11.)용담군 일동면 양지리 출신 의병. 문태수(文泰洙) 의진에 가담하여 박춘실(朴春實) 선봉부대에 배속되었다. 장수군 계북면 문성동(文城洞)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하여 1909년 5월 김준대(金俊大), 고명주(高明柱), 고원중(高元仲), 신치수(辛致守), 안왈오(安曰五), 심우상(沈尤相), 원도숙(元道淑), 조경화(趙京化), 하준태(河俊太) 등 2백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장수·용담 등 부근 촌락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는 활동을 하였다. 문성(文城) 동북쪽의 산중에서 함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선봉장 박춘실이 부상하여 체포되고 의병 13명이 전사하자 부대가 궤산하는 참패를 당했다. 그 후 다시 호남의병단에 귀속하여 유격 활동을 하다가 1909년 9월 추석을 맞이하여 일시 해산하여 귀가하였는데 장수 주재소의 순사가 탐지하고 9월 21일에 검거되었다.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태형(笞刑) 100도를 받는 고초를 당했다.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7년 8월 15일에는 진안군 독립 유공자들을 기리기 위해 진안군지역독립유공자추모사업회가 건립한 독립유공자추모탑(→이산묘 건너편)에 명단이 올라있다. →의병활동과 진안. 《참고문헌》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진안문화원, 2003),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