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의당(金三宜堂)
운영자 23-12-18 18:44 621 hit
1769~1823. 조선후기의 여류시인. 김일손(金馹孫)의 후손 인혁(仁赫)의 딸로 남원 서봉방(捿鳳坊, 교룡산 서남 기슭)에서 출생. 삼의당(三宜堂)은 호이다. 1786년 18세 때,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한 하립(河氵昱 ) 과 결혼하여 부부시인으로 해로하였다. 그의 호 삼의당은 시경의 도요시(桃夭詩) ‘宜室宜家在之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시집 온 삼의당은 시부(媤父)를 비롯한 시형제 다섯이 모두 시문(詩文)에 능하였기 때문에, 엄격했던 유교 가문의 생활규범 속에서도 시작(詩作)을 하고 인정을 받았다. 혼인 첫날밤에 화답시(和答詩)로 인연을 맺은 것은 이미 규수시인으로 천부적인 문필재능을 갖추었다는 증표이며, 남편과 일상생활의 애환을 시문으로 화답하던 시우(詩友)이기도 하였다. 또한 어머니로서 삼의당은 엄한 법도로 자녀를 훈도하였으나 자정(慈情)이 넘쳤고, 시부모를 봉양하고 형제와 친척까지 돌보아야 했던 고초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효심과 형제애로 가도(家道)를 세워나갔기 때문에, 가문에서는 물론 인근에서도 부도(婦道)를 칭송하였다. 가세가 빈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1801년 12월 남원에서 마령면 방화리(訪花里)로 남편을 따라 이주하였으나 3년 뒤 시부의 상을 당하였다. 문집으로 『삼의당고(三宜堂稿)』가 있으며, 이는 1930년 오상철(吳相喆)이 교열하고 정의택(鄭義澤)이 편집하여 정일섭(丁日燮) 발행의 석판본으로 간행된 바 있다. 판본은 1950년 을유문화사 발행의 <조선역대여류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47년 김억(金億) 발행의 『이조규수한시선집』인 『금잔디』에 삼의당의 시 32수가 번역되어 있으며, 1982년 황안웅(黃安雄) 번역의 『김삼의당시문집』이 총 210면으로 제일사에서 발행되었다. 본격적으로 부부의 시를 연구한 국문학자는 박요순(朴堯順[한남대학교])이며, 논문으로 <삼의당과 그의 시 연구>가 있다. 자녀관계와 묘(墓) 등은 삼의당의 부군 하립의 항에 기재되어 있다. →담락당·삼의당 부부시비, →하립, →김삼의당고 《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 韓南語文學(제1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