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1960. 일제강점기 진안출신 교육자. 안천면 삼락리 출생. 자는 광국(光國)이며, 호는 죽헌(竹軒)이다. 간숙공(簡肅公) 허주(許周)의 20세손이다. 송병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십세조인 허이찬(許以讚)과 부친 허형(許炯)의 두 문집을 교감 발행하였고, 주항마을 앞 안자천 하류에 봉암대를 건축하였다. 1929년 용담향교 직원(현 전교)과 1930년 경성 대성문학원(현 성균관대학 전신)의 강사를 역임하였다. 부인 밀양 박씨와 같이 건강하여 1957년 3월 희귀한 회혼례를 치렀다. 배를 앓았을 때 먹는 ‘통심환’을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가난한 사람에게 종자를 나누어주는 등 베푸는 성품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효행과 의행에 대한 포상은 1922년 4월 ‘공부자 성적도오륜행실중간소’에게서, 그리고 1930년 경성 대성문학원장 판서 민경호(閔京鎬)에게서, 인륜복지와 사회공익에 대한 표창으로 1945년 2월 11일 조선유도회장 경학원 박상준(朴相駿)에게서, 향교전교 재임시 공적에 대한 표창으로 1929년 진안군수 주시헌(朱時憲)에게서 각각 받았다. 76세로 타계하였을 때 경향 각지에서 수많은 조객이 운집하였고,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등의 조사가 있었다. 또한 유림은 그의 행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기적비를 용담향교 경내에 건립(1984. 12. 14)하였다. 그의 부인 밀양 박씨는 효부로 천거되었다. 《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