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연대 미상.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세운 무신이다. 영의정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 황수신(黃守身)의 후예로 문장이나 문필이 대성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에서 왜적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침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朴進)이 경주성에서 왜적에게 기습을 받아 함락되는 것을 보고 의병을 일으켰다. 경주부윤 박이장(朴而章)과 힘을 합해 박진을 도와 왜적을 대파하고 성을 탈환하는 큰 공을 세웠다. 조정에서 그에게 절충장군 부호군 병마절도사의 벼슬을 내렸다. 상전면 구룡리 세동마을 앞산에 그의 묘가 있는데, 인근 주민들은 이 산을 황정산이라 부르고 있다. 《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