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성(黃俊聖)
운영자 23-12-18 18:44 540 hit
1878~1910. 한말의 의병. 일명 준성(俊性). 백운면 오정리 출신. 대한제국군 군인으로 참령에 이르렀다. 구식군대가 해산된 후 항거활동을 하였는데, 1907년 12월 체포되어 내란죄 명목으로 「평리원(平理院)」에서 유형(流刑) 10년을 선고받고 전라남도 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일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의병장 강성택(姜成宅)과 상의하여 1909년 6월 유배지를 탈출, 강성택 휘하의 의병과 함께 총으로 무장하고 완도·해남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다음 달인 7월 추공엽(秋珙燁)·황두일(黃斗一)의 의병부대와 합류, 대장으로 추대되어 휘하의 의병 150여 명으로 부대를 정비하였다. 완도에서 4개리의 이장을 소집하여 의병자금을 모집하고, 해남에서 일진회원과 일본 헌병의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대둔사(大屯寺)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야습을 받아 의병부대가 해체되고, 숨어 지내다가 1909년 12월 붙잡혔다. 1910년 2월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대구공소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었다.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의병활동과 진안. 《참고문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진안문화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