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안천면에 세거한 문신. 황희(黃喜)의 5대손이다. 안천면에 세거하는 장수 황씨의 입향조로 알려졌다.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 하지만 문과에 급제하였거나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아 벼슬은 음직으로 나아간 것으로 추측된다. 황징은 원래 경상도 상주(尙州)에서 살다가 1550년에 진안군 이북면 이곡리(현 안천면 백화리 상리)에 옮겨 살게 되는데 그곳에 처가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화산서원에 황희의 초상과 함께 황보신(黃保身)·황징(黃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참고문헌》진안군청(http://eupmyeon.jinan.go.kr/),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