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1948. 3․1만세운동의 선봉. 임실 출생.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 장날을 이용하여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 등과 3·1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 오후 2시 오수리 장터에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중심이 된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 행진하였다. 둔남면사무소에서 면장, 면서기들과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로 가서 유치장 문을 부수고 김영필(金永弼) 등 구금된 사람들을 석방시켰다. 이어 4월 6일에는 마령면 평지리 뒷산에서 오기열(吳基烈)·전영상(全永祥)·김구영(金龜泳) 등과 인근 주민 수백 명을 모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헌병의 출동으로 제지당하였는데, 이 때 황해수는 적에게 끌려가면서도 늠름한 기색으로 주민을 격려하였다. 그 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대통령표창(1977)·건국훈장 애족장(1990)을 추서하였다. →삼일운동과 진안. 《참고문헌》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진안문화원, 2003), 『독립운동사 자료집』 3 (국가 보훈처),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전북의병사』 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