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시대 명현 40위 중 한 분. 자는 이원(而遠), 호는 취수당(醉睡堂). 계림군(鷄林君) 김균(稛)의 후예로 김경명(金鏡明)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웠다. 1601년에 사마(司馬)에 올라 음사(蔭仕)로 재랑(齋郞)의 직이 내려졌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광해군 대에 둘째 아들 입원(立元), 홍백석(洪百石) 등으로 하여금 혼탕한 조정에 상소를 올려 실정(失政)의 회복을 간하게 하였으나 마침내 하옥 당하였다. 당(堂)과 정자를 지어 ‘취수당(醉睡堂)’, ‘월파정(月波亭)’이라 이름하고 이경석(李景奭), 김수현(金壽賢) 등과 음풍농월로 만년을 은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