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1975. 한말의 독립운동가. 김중정(金重鼎)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대현(金大鉉)이다. 호는 달중(達中), 주천면 출생. 6살 때 김태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2살 때에는 화동학교(華東學校, 현 주천초등학교 전신)에서 수학한 뒤 모교에서 후배를 교육하였다. 경술국치의 통한을 달래며 후학에게 배일사상을 고취시켰고 개화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독립선언문을 무주·진안·장수 등지에 배포하고 4월 3일에는 김주한(金周漢), 양해관(梁海寬) 등과 함께 주민 200여 명을 주천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아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때로는 면사무소를 습격, 등사기를 훔쳐 문서를 등사하고 주재소를 파괴하기도 하였다. 또한 1920년에는 일본에 잠입하여 유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심어주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납치되었으나 탈출하였다. 1977년 12월 대통령 표창과 함께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