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2~1661. 조선 중후기 진안에 거주하였던 문신.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긍구당(肯構堂).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으로 조부는 김충립(金忠立)이다. 서울 황화방(皇華坊)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였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1636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었으나, 병자호란이 치욕적인 항복으로 끝나자 친명파[척화파]의 한 사람으로 사림에 묻힐 각오로 조부 김충립과 함께 은거하였다. 한때 충청남도 연산에 머물다가 1637년에 용담현의 주자천(朱子川) 변의 아름다운 고장 주천면으로 이주하였다. 1654년에 강당을 지어 와룡암(臥龍庵)이라 편액한 후 낙향의 한을 시와 거문고로 달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만년을 보냈다. 저술로는 『긍구당 유고(肯構堂遺稿←)』가 있다. 박성양이 비문을 쓴 묘비가 있다. 1924년 주천면 주양리의 주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긍구당 유고(肯構堂遺稿)』,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鎭安郡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