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삼(金致三)
운영자 23-12-18 18:44 618 hit
김치삼(1872∼1909.09)은 용담군 일서면 성암리(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성암마을) 출신이다. 그는 1907년 9월 초순경에 창의 기병한 유지명(柳志明)이 영솔하는 삼 남의병대에 가입하여 약 2년간 용담, 금산(錦山), 은진(恩津) 동지를 잠행 하면서 유격 활동에 앞장 섰다. 특히 1907년 10월 3일 밤에 그의 의진 30 여명이 심상의(沈相諱)와 노원섭(盧元燮)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금산읍을 습격하였을 때는 동지 정성일(丁成一) 둥과 함께 선두에서 분전한 결과 일본안 대석로구(大石口夕) 외 2명을 죽이고 충시모(沖〉壬) 외 7명과 일 본에 아부하는 한국인 1명에게 중경상을 입혔으며 우편취급소와 세무서의 건물 그리고 일본인 가옥 9동을 불태우고 양총 2정과 탄환 동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9년 1월에 일본군 헌병에게 체포되어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모살·강도죄 및 방화죄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동년 8월 2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고 동년 9월 14일 대심원에서 상고가 기각,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재판 기록에는 용담읍을 습격한 것으로 기재되 어 있으나 다른 재판 기록으로 보아 금산읍을 오기한 것 같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의병활동과 진안 《참고문헌》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 9(국가보훈처, 1991), 『전북 진안지역 근현대 민족운동사 학술 보고서』(진안문화원, 2003)